말이산고분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와 말산리에 위치한다. 고분군의 명칭은 고분이 분포하는 구릉지의 이름을 따랐다. 1~6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아라가야의 대표 고분군이다. 7개의 고분군 중 가장 오랜 기간 조성되었으며, 봉토를 크게 조성하지 않는 목관묘, 목곽묘에서 석곽묘, 석실묘로 변화하면서 거대한 봉토분이 군집하는 기념비적인 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가야고분군’의 가시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말이산고분군은 구릉지 능선을 따라 조성된 대형 봉토분으로 인해 고분군은 이후 시대에도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되었으며, 16세기 문헌에는 말이산고분군을 고대 왕들의 무덤으로 기록하였다. 이러한 인식 덕분에 20세기 초까지 구릉지 일대의 봉토분은 잘 보존될 수 있었다. 고분군이 조성된 구릉지 동쪽에는 1950년대 군청 건물과 함께 시가지가 인접하여 조성되었으며, 구릉지 서쪽과 남쪽은 농경지로 둘러싸여있다. 구릉지 북쪽은 1950년대부터 시가지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말이산고분군은 20세기 초부터 현장 기록 및 고고학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1939년 고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때 고분군의 분포와 행정구역을 경계로 도항리고분군과 말산리고분군으로 각각 지정되었으며, 이후 1963년 고적이 사적으로 전환되었다.
5~6세기 조성된 봉토분은 구릉지 능선과 사면을 따라 127기가 조성되어 있다. 5세기부터 축조되는 석곽묘는 가늘고 긴 가야식 석곽묘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세장방형의 석곽묘에는 중앙부에 피장자의 시신이 안치되고 머리 위쪽에는 다량의 토기가 부장되며, 발 아래쪽에는 순장자가 배치된다. 이는 아라가야식 석곽묘의 전형적인 공간 분할 방식이다.
20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 결과 토기, 철제무기, 교역품 등 다량의 부장품이 확인된다. 특히 토기는 고배·기대·장경호와 같은 가야토기의 공통적인 구성이 확인되며, 불꽃모양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투창이 나타난다. 또한 집모양, 수레바퀴모양, 사슴모양, 배모양 등 다양한 형상을 본 떠 만든 토기도 출토되었다. 아라가야는 물길을 기반으로 가야의 여러 정치세력과 백제, 일본(왜) 등 주변 국가와 교역하면서 낙동강 유역에서 가야연맹 전 시기 동안 세력을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