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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세계유산
한국의 세계유산 목록(총16건 - 문화14건, 자연2건)
- 해인사 장경판전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the Depositories for the Tripitaka...](1995)
등재 : 1995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 (ⅳ), (ⅵ)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海印寺) 장경판전(藏經板殿)은 13세기에 제작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봉안하기 위해 지어진 목판 보관용 건축물이다. 주불전 뒤 언덕 위에 세워진 단층 목조건물로 15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부터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로 지어졌고 창건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대장경 자체도 인류의 중요한 기록유산이지만 판전 또한 매우 아름답고 건축사적 가치가 높은 유산이다. 장경판전은 두 개의 긴 중심 건물 사이에 작은 두 개의 건물이 하나의 마당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도록 배치되어 있다. 건물 자체는 장식적 의장이 적어 간결, 소박하며 조선 초기의 목구조 형식을 보여 준다.
출처 : 문화재청
- 종묘 [Jongmyo Shrine] (1995)
등재 : 1995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ⅳ)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종묘(宗廟)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왕이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문무백관 (文武百官)과 함께 정기적으로 제사에 참여한 공간으로 왕실의 상징성과 정통성을 보여 준다. 동아시아의 유교적 왕실 제례 건축으로서 공간계획 방식이 매우 독특하고 그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14세기 말에 창건되어 유지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세기 초에 중건하였고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출처 : 문화재청
- 석굴암과 불국사 [Seokguram Grotto and Bulguksa Temple] (1995)
등재 : 1995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ⅰ), (ⅳ)
석굴암(石窟庵)과 불국사(佛國寺)는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고대 불교 유적이다. 석굴암은 불상을 모신 석굴이며, 불국사는 사찰 건축물이다. 두 유산은 모두 경주시 동남쪽의 토함산(吐含山)에 있으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두 유산은 8세기 후반에 같은 인물이 계획해 조영하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완공 되었다. 석굴암은 화강암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쌓아 만든 석굴로 원형의 주실 중앙에 본존불(本尊佛)을 안치하고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나한상, 신장상 등을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불국사는 인공적으로 쌓은 석조 기단 위에 지은 목조건축물로 고대 불교 건축의 정수를 보여 준다. 특히 석굴암 조각과 불국사의 석조 기단 및 두 개의 석탑은 동북아시아 고대 불교예술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출처 : 문화재청
- 창덕궁 [Changdeokgung Palace Complex] (1997)
등재 : 1997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ⅱ), (ⅲ), (ⅳ)
창덕궁(昌德宮)은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궁궐이다. 건축과 조경이 잘 조화된 종합 환경디자인사례이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공간 분위기를 읽게 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15세기 초에 정궁인 경복궁 동쪽에 이궁으로 조성되었으며, 그에 따라 애초의 건립 목적이나 도성 내에 자리한 입지도 경복궁과 차이가 있었다.
출처 : 문화재청
- 화성 [Hwaseong Fortress] (1997)
등재 : 1997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ⅱ), (ⅲ)
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이다. 정조(正祖)가 자신의 부친인 장헌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읍치소를 이전하고 주민을 이주시킬 수 있는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방어 목적으로 조성하였다. 1794년 2월에 착공하여 2년 반에 걸친 공사 후 완공되었다. 성곽 전체 길이는 5.74Km이며, 높이 4~6m의 성벽이 130㏊의 면적을 에워싸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2000)
등재 : 2000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ⅲ)
한국의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선사시대 거석기념물로 무덤의 일종이며,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에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한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형식의 다양성과 밀집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고인돌 문화의 형성과정과 함께 한국 청동기시대의 사회구조 및 동북아시아 선사시대의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출처 : 문화재청
- 경주 역사 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2000)
등재 : 2000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ⅱ), (ⅲ)
경주 역사 지구에는 조각, 탑, 사지, 궁궐지, 왕릉, 산성을 비롯해 신라 시대의 여러 뛰어난 불교 유적과 생활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7세기부터 10세기 사이의 유적이 많으며 이들 유적을 통해 신라 고유의 탁월한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신라의 1,0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인의 생활 문화와 예술 감각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경주 역사 지구는 총 5개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불교 유적을 포함하고 있는 남산지구, 옛 왕궁 터였던 월성지구, 많은 고분이 모여 있는 대릉원지구, 불교 사찰 유적지인 황룡사지구, 방어용 산성이 위치한 산성지구가 이에 해당한다.
출처 : 문화재청
-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 [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 (2007)
등재 : 2007년분류 : 자연등재기준 :(ⅶ), (ⅷ)
총 면적 18,846㏊ 규모의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은 천장과 바닥이 다양한 색의 탄산염 동굴생성물로 이루어지고 어두운 용암 벽으로 둘러싸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계로 손꼽히는 거문오름용암동굴계, 바다에서 솟아올라 극적인 장관을 연출하는 요새 모양의 성산일출봉 응회구(tuff cone), 그리고 폭포와 다양한 모양의 암석, 물이 고인 분화구가 있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의 세 구역으로 구성된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유산은 지질학적 특성과 발전 과정 등 지구의 역사를 잘 보여 준다.
출처 : 문화재청
- 조선 왕릉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2009)
등재 : 2009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ⅲ), (ⅳ), (ⅵ)
조선왕릉(朝鮮王陵)은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고 총 40기에 달한다. 1408년부터 1966년까지 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왕릉은 선조와 그 업적을 기리고 존경을 표하며, 왕실의 권위를 다지는 한편 선조의 넋을 사기(邪氣)로부터 보호하고 능묘의 훼손을 막는 역할을 했다. 왕릉은 뛰어난 자연경관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보통 남쪽에 물이 있고 뒤로는 언덕에 의해 보호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이며, 멀리 산들로 둘러싸인 이상적인 자리를 선택해 마련되었다. 왕릉에는 매장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례를 위한 장소와 출입문도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 [Historic Villages of Korea : Hahoe and Yangdong] (2010)
등재 : 2010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ⅲ), (ⅳ)
14세기~15세기에 조성된 하회(河回)마을과 양동(良洞)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씨족 마을이다. 숲이 우거진 산을 뒤로 하고, 강과 탁 트인 농경지를 바라보는 마을의 입지와 배치는 조선 시대(1392~1919) 초기의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옛 마을은 주변 경관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자양분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종가와 양반들의 기거했던 목조 가옥, 정자와 정사, 서원과 사당, 옛 평민들이 살던 흙집과 초가집 등이 있다. 17세기~18세기의 시인들은 정자와 쉼터에서 마을을 둘러싼 강과 산과 나무의 경치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출처 : 문화재청
- 남한산성 [Namhansanseong] (2014)
등재 : 2014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oo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산지에 축성된 남한산성(南漢山城)은 조선시대(1392~1910)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임시 수도로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건설된 산성이다. 남한산성의 초기 유적에는 7세기의 것들도 있지만 이후 수차례 축성되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17세기 초, 중국 만주족이 건설한 청(淸)나라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여러 차례 개축되었다. 남한산성은 승군(僧軍)이 동원되어 축성되었으며 이들이 산성을 지켰다. 남한산성은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전해온 성제(城制)의 영향과 서구의 화기(火器) 도입에 따라 변화된 축성 기술의 양상을 반영하면서 당시의 방어적 군사 공학 개념의 총체를 구현한 성채이다.
출처 : 문화재청
- 백제역사유적지구 [Baekje Historic Areas] (2015)
등재 : 2015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ⅱ), (ⅲ)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660년까지 700여년간 존재한 한반도의 고대국가 중 하나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등 3개 시·군의 8곳 문화유산으로 구성되어있다. 세부 등재지역을 살펴보면, 충남 공주시는 공산성(사적 제12호), 송산리 고분군(사적 제13호) 등 2곳, 충남 부여군은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사적 제428호와 사적 제5호),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 정림사지(사적 제301호), 부여나성(사적 제68호) 등 4곳, 전북 익산시는 왕궁리유적(사적 제408호), 미륵사지(사적 제150호) 등 2곳이다.
출처 : 문화재청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2018년)
등재 : 2018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ⅱ), (ⅲ)
산사는 한반도 남쪽 지방에 위치한 7개 불교 산지 승원-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선암사, 대흥사-으로 이루어져 있다. 7세기에서 9세기에 창건된 이들 7개 사찰은 신앙과 영적 수행, 승려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로 한국 불교의 역사적인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다양한 불교신앙이 산사의 경내에 수용되었으며, 이는 역사적인 구조물과 전각, 유물, 문서 등에 잘 남아있다. 사찰 운영에서 나타나는 자립성과 승려 교육, 한국 선불교의 특징인 영적 수행과 교리 학습의 공존 등의 지속적인 전통에서 한국 불교의 무형적, 역사적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산사는 조선시대 억압과 전란으로 인한 손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신앙과 일상적인 종교적 실천의 살아있는 중심으로 남아있는 신성한 장소이다.
출처 : 문화재청
-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2019년)
등재 : 2019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ⅱ), (ⅲ)
‘한국의 서원’(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건립)은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기관의 유형을 대표하는 9개 서원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으로, 한국의 성리학과 연관된 문화적 전통에 대한 탁월한 증거이다.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 9개 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의 중부와 남부 여러 지역에 걸쳐 위치한다.서원은 중국에서 도입되어 한국의 모든 측면에서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성리학을 널리 보급한 성리학 교육기관으로서 탁월한 증거가 되는 유산이다. 서원의 향촌 지식인들은 학습에 정진할 수 있는 교육체계와 유형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학습과 배향, 상호교류는 서원의 핵심적인 기능이었으며 이는 건물의 배치에 잘 드러나 있다. 서원은 그 지역 지식인들인 사림이 이끌었으며, 사림의 이해관계에 따라 향촌의 중심으로 발전하고 번성했다. 서원의 위치에 가장 크게 고려되는 요소는 선현과의 연관성이다. 두 번째 요소는 경관으로, 자연감상과 심신단련을 위해 산과 물이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서원에서 누마루 양식의 개방적인 건물은 그러한 경관과의 연결을 더욱 원활하게 한다. 학자들은 성리학 고전과 문학작품을 공부했으며, 우주를 이해하고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고인이 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을 배향하고 강한 학문적 계보를 형성했다. 나아가 서원에 근거한 다양한 사회정치적 활동을 통해 성리학의 원칙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출처 : 문화재청
- 가야고분군[Gaya Tumuli](2023년)
등재 : 2023년분류 : 문화등재기준 : (ⅲ)
'가야고분군'은 1~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의 7개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이다. 7개 고분군은 대성동고분군, 말이산고분군, 옥전고분군, 지산동고분군, 송학동고분군,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이다. 가야고분군은 지리적 분포, 입지, 묘제, 부장품을 통해 다수의 개별 정치체가 동질성을 바탕으로 상호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수평적 관계를 형성했던 가야의 독특한 정치 체계를 나타낸다. 가야 연맹은 내부적으로 여러 정치체 간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적으로는 주변국과의 교섭을 통해 고대 동아시아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7개의 고분군은 한반도 남부의 해안과 내륙의 각 정치체 중심지의 가시성이 뛰어난 구릉지에 오랜 기간 군집 조성된 최상위 지배층의 고분군으로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각 정치체의 존재를 보여준다. 가야식 석곽묘와 토기를 비롯한 부장품은 동질성을 공유했던 가야연맹 전체의 지리적 범위를 알려주고, 이들의 세부적인 차이는 연맹을 구성했던 각 정치체의 범위와 개별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대등한 수준의 위세품과 교역품은 연맹을 구성한 각 정치체가 자율성을 가진 수평적 관계였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