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동고분군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위치한다. 고분군의 명칭은 고분이 분포하는 지명을 따랐다. 5~6세기 가야 북부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대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이다. 가시성이 뛰어난 높은 구릉지 위에 고분군이 밀집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어, 연맹의 중심세력으로서 대가야의 위상과 함께 가야연맹의 최전성기를보여준다.
고분군은 대가야의 중심지를 감싼 배후산지에 조성되었으며, 북쪽 정상부에서 남쪽 끝자락까지 704기의 봉토분이 분포한다.
지산동고분군은 높은 구릉지 능선을 따라 늘어선 거대한 봉토분들로 인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고대 가야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다. 20세기 초부터 발굴조사 되었으며 가야 고고학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례이다. 지산동고분군은 중요성이 인정되어 1939년 고적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1963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고적이 사적으로 전환되었다.
대가야는 내륙의 철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5세기부터 가야연맹을 주도하였다. 지산동고분군에는 5세기부터 6세기 후반까지 석곽묘, 석실묘가 순차적으로 축조되었다. 가야 멸망과 함께 지산동고분군의 축조는 중단되었다. 가야 멸망 이후 시대에도 고령은 가야의 옛 땅으로 인식되었고, 19세기 문헌에는 지산동고분군이 고대 왕들의 무덤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 덕분에 20세기 초까지 구릉지 일대의 봉토분은잘 보존될 수 있었다.
지산동고분군에는 5세기부터 봉토분이 군집하여 조성되기 시작한다. 특히 대형 고분은 능선을 따라 연속적으로 분포하고 중소형 고분은 사면부에 분포해 있어 고분의 군집과 배치를 통한 가야 지배층의 계층분화양상이 나타난다. 가장자리에 돌을 쌓아 원형의 평면을 만들고 그 안에 주곽, 부곽, 순장곽을 구분하여 축조하는 가야식석곽묘의 가장 발달된 유형이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다. 특히 5세기 후반에 축조된 44호분은직경 27m의 대형 봉토분으로, 중앙에 주곽을 배치하고, 2기의 부곽과 32기의 순장곽을 가장자리에 배치하였다.
5세기에 출현한 대가야식 토기는 물결문양장식의 장경호, 뱀모양장식이 붙은 기대 등이 특징이다. 대가야식토기는 5세기 후반에 가야 각 정치체로 확산되어 가야토기 양식의 공통성 형성에 영향을 준다. 대가야는 5세기부터 주변국과 활발히 교역하였다. 지산동 44호분에서출토된 3점의 청동그릇은 백제로부터, 73호분에서 출토된 새날개모양 관장식은 신라로부터, 44호분 출토 야광조개 국자는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