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가야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은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9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약 460,011㎡의 규모로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로 19차례에 걸쳐 실시된 조사를 통해 101기의 봉토분과 봉토가 남아 있지 않은 고분 116기, 발굴조사를 통해 새롭게 조사된 유구 등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총 320여개의 고분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녕지역은 낙동강을 통해 합천과 고령 등 가야지역과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청도와 밀양을 넘어 신라와 연결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은 화왕산의 서쪽 구릉 완사면과 지능선 상부의 넓은 범위에 걸쳐 낙동강을 조망하는 위치에 분포한다. 창녕지역은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비자화, 비사벌, 비화가야 등으로 기록된 가야의 고지로 진흥왕 16년(555년) 전후 신라권역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화가야는 신라와 가야의 경계에 위치하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비화가야를 대표하는 토기와 일본, 신라, 백제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일본산으로 추정되는 녹나무관, 녹각제 장검, 패제운주, 신라·백제의 다양한 장식마구, 금동관, 청동제초두, 원두대도 등이 그 사례이다.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은 가장 중심에 위치한 교동-교동에서 서쪽으로 뻗은 지능선-송현동의 순서로 조영되면서 고분군의 규모가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대형 봉분은 화왕산 서사면에 분포한다.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은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 조성된 비화가야 중심고분군으로 주묘제는 수혈식석곽과 횡구식석실묘이다. 하나의 봉분에 하나의 매장주체부가 있는 형태이며, 부곽이나 별도의 순장곽은 없다. 횡구식석실묘는 묘도가 있어 추가장이 가능한 구조이나 실제로 추가장이 이루어진 예는 조사되지 않았고 석실 내에서 순장이 확인되었다. 또한, 개석을 덮기 이전 매장이 이루어지거나 묘도를 먼저 쌓아 올린 경우가 있어 석실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