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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가야고분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송현리에걸쳐 위치한다. 고분군의 명칭은
고분이 분포하는 지역의 명칭을 따랐다. 5~6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비화가야의 중심지에 조성된 고분군으로, 묘제와 부장품을 통해 신라와 자율적으로 교섭했던 가야정치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고분군은 창녕분지의 배후산지에서 서쪽 평야를 향해 뻗은 구릉지에 조성되어 있다.
모두 115기의 봉토분이 분포한다.
봉토분이 분포하지 않는 지대에도 지하에 많은 수의 고분이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세기에 축조된 고분이 구릉지 능선을 따라 위치하며, 6세기에 축조된 고분이 구릉지의 동쪽 사면으로 위치한다.
가야 멸망 이후 비화가야의 창녕분지가 신라의 주요 지방 거점으로 변화하면서, 고분군 내에 7세기 후반까지 신라 고분이 추가로 축조되었다.
20세기 초 발굴조사가 대규모로 이루어져 가야고분군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나, 일부 고분은 도굴의 피해를 입었다.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은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1939년 고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때 고분군의 분포와 행정구역을 경계로 교동고분군과 송현동고분군으로 각각 지정되었으며, 이후 1963년 고적이 사적으로 전환되었다.
2000년대 발굴조사를 통해 두 고분군의연관성이 밝혀져 2011년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으로 통합해 재지정하였다.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에는 크고 작은 봉토분이 군집하여 조성되어 있다. 작은 고분이 큰 고분 주위에 위치한다.
특히 7호분 주위에는 중소형 고분이 위성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대형 고분과 중소형 고분의 배치방식을 통해 가야 지배층의 계층분화모습을 잘 보여준다.
세장한 형태이지만 매장부의 한쪽 끝에 입구부가 결합되어
있는 독특한 형식의 가야식 석곽묘가 확인된다. 입구부는 장례 시
피장자의 관을 이동하기 위한 시설로서 3호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한편 봉토분 2기를 연접하여 축조한 표형분과 매장부를 자갈돌로 덮고 점토로 마무리한 적석목곽묘의 사례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신라와 가까운
지역의 특성이 묘제에 반영된 것이다.
부장품 중 대도와 갑주의 일부는 대가야,
백제,
일본에서 유래한 교역품이다. 그러나 금제귀걸이, 금동제나비모양관장식, 은제허리띠장식, 마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역품은 신라계로서 신라와의 밀접했던 관계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