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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가야의 지역연맹사 연구 (加耶의 地域聯盟史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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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백승충
  • 시대 삼국
  • 학술지명
  • 페이지 323p
  • 학위수여기관 부산대학교
  • 학위논문사항 사학과
  • 발행지역 부산
  • 발행년도 1995

초록

기원전 2세기 후반 낙동강하류 및 경남해안지역에 철기문화가 보급되면서 弁韓 小國이 성립하는데, 기원 전후해서는 변한 12국 가운데 金海의 駕洛國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 배경에는 풍부한 철자원과 대외교역권의 행사가 있었는데, 3세기 전반까지 가락국 중심의 ‘김해 지역연맹체’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3세기 중반 이후 漢郡縣의 쇠퇴 등 국제관계의 변화에 따라 연맹체는 분열되어 4세기말까지는 지속되었다. 고구려남정 이후 5세기에 들어 高靈 加羅國이 새롭게 가야제국의 통합을 주도하면서 ‘고령지역연맹체’의 맹주로 등장하였다. 가라국은 낙동강중류와 서부경남 일원을 동일 문화기반으로 하면서 479년에는 ‘加羅國王’의 이름으로 중국 南齊와 독자적인 외교관계를 맺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6세기에 들어 백제가 연맹체 소속의 기문·대사지역을 빼앗자 가라국은 축성과 우륵12곡의 제작을 통해 연맹체의 결속에 주력한다. 또한 신라와는 결혼동맹을 통해 자구노력을 꾀한다. 6세기 전반 고령 지역연맹체의 약화 속에서, 김해 등 남부가야제국은 신라에 흡수된다. 그러나 함안의 安羅國은 529년 이후 친신라책을 편 까닭에 540년대 중반까지 독자성을 유지하는데 ‘安羅駐在倭臣’도 안라에 적극 동조하여 자국의 이익을 도모한다. 그러나 완산성전투(554년) 이후 신라는 가야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공략에 나서 안라국(555~562년)과 가라국(562년)을 차례대로 복속함에 따라 한국고대사상 가야는 완전히 소멸하였다.

목차

서론

   1. 연구현황

   2. 연구방향

     1) 연구방법

     2) ‘지역연맹체’의 설정


I. 김해 지역연맹체의 성립과 발전

  1. 1∼3세기 전반 고고자료의 검토

 2. 김해 가락국의 성장

     1) 개국설화의 분석

     2) 전쟁관련기사의 검토

     3) 가락국의 교역집단 

 3. 김해 지역연맹체의 구조 


II. 김해 지역연맹체의 분열

  1. 3세기 후반 ∼ 4세기 고고자료의 검토 

  2. 교역체계의 변화

  3. 김해 지역연맹체의 성격변화


III. 고령 지역연맹체의 성립과 발전 

  1. 5 ∼ 6세기 고고자료의 검토

  2. 고령 가라국의 성장

     1) 개국설화의 분석 

     2) 가락국의 정치적 성장 

  3. 고령 지역연맹체의 성립과 구조


IV. 고령 지역연맹체의 약화

  1. 백제의 기문, 대사 진출 

  2. 가락국과 신라의 결혼동맹

  3. 우륵십이곡에 나타난 연맹체의 변화


V. 가야 지역연맹체의 소멸과정

  1. 남부가야제국의 소멸 

  2. 안라국의 대두와 소멸

     1) 안라국의 대두

     2) 안라국의 친신라정책

     3) 안라국의 소멸

  3. 가락국의 멸망 


결론

가야의 지역연맹사 연구 (加耶의 地域聯盟史 硏究)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야의 지역연맹사 연구 (加耶의 地域聯盟史 硏究)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