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대구.경산지역 고총고분의 연구 (大邱.慶山地域 高塚古墳의 硏究)
목록- 저자 김용성
- 시대 삼국
- 학술지명
- 페이지 329p
- 학위수여기관 영남대학교
- 학위논문사항 문화인류학과
- 발행지역 경산
- 발행년도 1997
초록
영남지방의 분묘는 B.C. 2세기 무렵에 축조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까지의 변천상은 木棺墓段階(Ⅰ단계)→木槨墓段階(Ⅱ단계)→高塚段階(Ⅲ단계)→石室段階(Ⅳ단계)로 정리하여 살펴볼 수 있다. 고총단계에는 다양한 형식의 묘제가 사용되었으나 지역과 계층에 따라 定型化가 이루어져 있었다. 대구와 경산지역에서 확인되는 고총단계의 지역단위 정치체인 소국 또는 소국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소국과 同列政治體로 이해되는 소별읍은 경산지역에 2개(경산 남부와 북부), 대구지역에 4개(대구중심부, 칠곡지역, 대구 북서부, 대구 남서부)로 모두 6개가 확인된다. 이 소국들은 구성 읍락과 크기 등에서 차등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동열정치체라 하더라도 이들 사이에는 엄연한 세력차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그들이 경쟁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하위 읍락들 사이에도 각각의 위계 차이로 보아 세력의 격차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당시 소국은 국읍이라는 1次中心地(국읍)를 가지고 있고, 하위에 몇 개의 읍락을 통괄하고 있는데, 이 읍락은 다시 중심취락(중심촌)인 2次中心地를 가지며 이 중심취락이 중심이 되어 몇 개의 취락들이 통합된 지역집단으로 볼 수 있다. 소국의 최정점 신분의 분묘들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경주지역 분묘들에서 출토되는 유물, 특히 威勢品으로 볼 수 있는 착장유물을 비교해 보면 소국들이 공납과 사여라는 복속의례를 매개로 하여 거의 완전한 자치를 허용받는 상태로 신라의 간접지배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소국의 최고지배자인 干은 각 소국에 하나씩만 존재한 것이 아니고 복수로 존재하고 있었다.
목차
I. 서론
1. 연구목적과 범위
2. 연구사
II. 연구배경과 방법
1. 이론적 배경
2. 분묘와 묘제의 개념
3. 분석방법
III. 대구ㆍ경산지역의 발굴조사 분묘
1. 대구지역
가. 비산동ㆍ내당동고분군
나. 복현동고분군
다. 대명동고분군
라. 칠곡지역고분군
마. 죽곡리고분
2. 경산지역
가. 임당유적
나. 북사리ㆍ교촌리고분군
다. 욱수동고분군
라. 불로동고분군
IV. 분묘의 편년
1. 단계의 설정
2. 고총단계 이전의 토기와 분기
가. 목관묘단계
나. 목곽묘단계
3. 고총단계의 토기와 분기
가. 토기의 형식
나. 분기와 토기의 조합상
4. 연대의 비정
V. 고총단계의 성립과 묘제의 변화
1. 형식의 분류
가. 분형의 분류
나. 묘형의 분류
1) 주부곽 배치의 분류
2) 부장품 배치의 분류
2. 고총단계의 성립과 전개
가. 묘제의 변천
나. 분형의 변천
다. 묘형의 변천과 계보
1) 묘형의 변천
2) 묘형의 계보
VI. 고총단계의 지역집단과 그 성격
1. 계층화
가. 착장유물에 의한 계층화
나. 기타유물에 의한 계층화
다. 유구의 크기에 의한 계층화
2. 집단의 설정
가. 소지역과 분묘의 분포
1) 경산지역
2) 대구지역
나. 발굴조사 분묘의 지역성
1) 유구
2) 유물
다. 단위집단의 설정
3. 지역집단의 성격
가. 묘제와 문화권
나. 집단의 구성과 읍락의 성격
다. 소국과 신라와의 관계
라. 소국의 지배집단
VII.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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