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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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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사물국의 성립과 변천

The formation and transition of Samulguk.

목록
  • 저자 장혜금
  • 시대
  • 학술지명
  • 페이지
  • 학위수여기관 창원대학교
  • 학위논문사항 사학과 2015. 2
  • 발행지역
  • 발행년도 2015

초록

삼국시대에는 다양한 정치집단이 존재했고 그러한 정치집단 가운데 가야제국들이 포함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개별 정치집단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지 않은 ‘삼국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가야를 비롯한 개별 정치집단은 시공간적으로 한국 고대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므로 이에 대한 연구 없이 한국 고대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사물국은 지금의 사천 지역에 있었던 가야 소국이다. 그 동안 포상팔국전쟁을 비롯한 다른 가야사 연구에서 사물국이 함께 언급된 적은 있으나 사물국 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물국은 점토대토기단계에서부터 철기 교역을 하였던 늑도집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초기철기시대 늑도는 교역의 거점이자 철기 생산·수출지로 당시 최고의 선진지역이었다. 늑도집단에 앞서 사천 내륙에 존재했던 집단들과 늑도집단은 필요한 물자와 정보를 교환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늑도는 동남해안을 따라 형성된 교역 루트 상에 위치했기 때문에 대외교역에 유리하였고 철기 제작기술을 먼저 수용하여 내부 유통에서도 앞서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철을 위주로 한 교역 루트가 김해 중심으로 바뀌면서 대외교역에서 소외되고 철기 제작 기술의 보편화로 내부 유통에서도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대외교역 루트의 변화는 사물국을 비롯한 포상팔국에게 큰 위기였다. 3세기 후반에 일어난 포상팔국전쟁은 그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전쟁에 패배한 후 늑도집단은 사천 내륙으로 이주하였고 사물국이라는 국명은 그들과 함께 옮겨갔다. 포상팔국을 비롯한 가야 소국들은 전쟁 후 일시적으로 침체기를 겪었을 것이나 백제 마한 왜 그리고 가야 소국들끼리 교류하며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400년 고구려 남정 당시 사물국은 백제와 왜가 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서부경남지역보다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삼국시대 사물국의 중심지는 고읍리 일대로 생각된다. 5세기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면서 사물국은 친신라적 외교활동을 통해 활로를 찾고자 했지만 6세기 중엽 가야 소국들은 모두 신라에 병합되었고 사물국도 비슷한 시기에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