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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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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대가야 고총체계와 왕묘

A Study on High Mound Tomb System and Royal Tombs of Daegaya

목록
  • 저자 김용성
  • 시대
  • 학술지명 한국고대사탐구
  • 페이지
  • 발행기관 한국고대사탐구학회
  • ISBN/ISSN
  • 발행지역
  • 발행연도 2014

초록

고령과 그 인근 합천의 일부지역에 분포하는 대가야 고총은 고령 쾌빈리 목곽묘에서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 5세기 초 지산동 73호분에서 시작되었다. 세장방형의 수혈식석곽을 기조로 한 대가야 고총은 지산동 73호분과 75호분의 과도기를 거쳐 5세기 전반 지산동 30호분과 35호분 단계에서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고, 5세기 후반 이후 44호분과 45호분과 같은 복잡한 초대형 묘로 발전한다. 대가야 고총은 묘곽의 배치에서 특이한 모습을 보이는데, 주부곽과 순장곽의 수나 그 배치 형태에 따라 5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주곽의 구조도 3개의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가장 복잡한 것의 경우 석곽의 내부에 目자형의 목곽을 설치하고 그 중간 칸에 피장자를 배치하여 다른 지역, 특히 신라의 고총과는 구별된다. 대가야 고총이 정형화된 모습을 갖춘 뒤 5세기 후반에는 대가야 권역의 각지로 확산되어 대가야의 고총체계가 성립된다. 이때 대가야식 고총이 축조된 지방으로는 합천 옥전, 거창 말흘리, 함양 백천리, 남원 월산리와 두락리 등을 들 수 있다. 이를 신라의 고총체계와 비교하면 늦어도 5세기 말 혹은 6세기 초에 대가야가 지역 수준을 넘어 광역의 영역을 가진 정치체인 초기국가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이 주산성의 남쪽 능선에 열을 지어 분포하는 대가야의 왕묘이다. 그것의 배치 양상은 당시 동아시아 제국의 왕묘 배치와 비견되는 것으로 대가야의 국제성을 드러내 준다. 그러나 대가야는 신라와 같이 율령을 가진 고대국가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신라에 복속되어 지산동에서 고총의 축조는 막을 내린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대가야 고총의 출현 Ⅲ. 신라와 비교한 대가야 고총과 고총체계 Ⅳ. 대가야 왕묘의 배치와 의미 Ⅴ.맺음말 【참고 문헌】 Abstract